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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Coming Home 0

국뷔

 태형은 돈 불리는 법 따윈 몰랐다. 번 돈은 매일매일 현금으로 들어왔고, 일당으로 받는 돈치곤 많은 돈을 옷방 구석 리모와 캐리어에 처박아두고 살았다. 단골 사모가 사준 벤츠를 팔고 그 캐리어에 들었던 지폐들을 몽땅 털어 현금 일시불로 산 페라리였다. 

새빨간 페라리의 바퀴 네 개가 몽땅 펑크가 나 주저앉아 있었다. 태형은 충격 받은 얼굴로 주춤주춤 페라리 쪽으로 다가갔다. 한 쪽이 펑크 난 정도야 재수 똥 밟았겠거니 하고 넘길 텐데 네 쪽이 다 주저앉은 모양새는 처음이었다. 화도 안 났다. 태형은 착잡한 표정으로 차려입은 정장의 주머니 위를 더듬거려 먼저 담뱃갑과 듀퐁 라이터를 찾아냈다. 가느다란 에쎄 체인지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그대로 붙박이처럼 서서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차 앞에 털썩 쪼그려 앉아 다 터진 바퀴를 쓰다듬으며 욕을 경처럼 외었다. 바퀴 한 짝만 기백만 원이 넘어갔다. 네 짝이면 얼마야 대체. 태형은 피우던 담배를 짓씹었다. 단골 지명들 남편 중에 이렇게 경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있었나. 태형은 머릿속으로 수많은 지명 손님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결국 새빨간 페라리 문짝에 머리를 박고 내가 죽일 놈이라며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 앞에 앉아서 줄창 담배만 피워대는데 수트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태형은 만사가 다 귀찮아져 건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전정국 왜."


전화기 속의 상대는 태형의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안다는 듯 다짜고짜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어왔다. 태형은 담배 하나를 새로 피워 물며 찡얼거렸다. 


"누가 페라리 타이어 다 펑크 냈어, 씨발. 어떤 새낀지 잡히면 진짜..."


그 말에 정국이 으하하하, 크게 웃었다. 태형은 한숨 쉬듯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너 그러다 진짜로 칼 맞는 거 아냐? 

"칼은, 씨발... 차라리 날 찌르지 이게 얼마짜린데."


달릴 데도 없는 서울에서 살면서 곧 죽어도 최고급을 고집했다가 이 사단이 났다. 태형은 미용실에서 초저녁부터 드라이 받은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리며 짜증을 냈다. 그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던 전화 너머의 정국이 말했다.


-좌우당간 오늘 갈 거니까 걸어서라도 출근해. 

"그럴 기분 아냐, 씨발 딴 새끼 끼고 놀든가.“


*


태형은 잘생기고 몸 좋고, 키도 큰데다가 노래를 잘하고 춤까지 잘 췄다. 손님 가려 받는다는 그런 호스트바에서도 인기가 꽤 좋은 호스트라는 말이었다. 늘 뒤끝 없이 쿨했고 불필요하게 손님 비위 맞추느라 쩔쩔 매지도 않았다. 기분이 표정으로 다 드러났다. 서비스직과는 적성이 영 맞지 않았지만 손님들은 태형의 그런 모습도 좋아했다. 뒤에서 호박씨 까지 않는다면서. 

태형은 도산공원 근방의 연예인들만 다닌다는 샵에서 초저녁에 드라이와 약간의 메이크업을 받고 출근을 한다. 몇몇은 콜을 부르거나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하는데 태형은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 그런 태형이 며칠째 콜때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페라리 유지비보다야 콜 불러 다니는 게 싸게 먹히지만 콜 운전기사한테 지폐 몇 장을 내밀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 태형이 타던 페라리의 타이어는 본국에서 직수입을 해와야해서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약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서비스 센터에서 노발대발하는 태형에게 쩔쩔 매던 담당 딜러가 이번 기회에 전체적으로 검사도 하시고 필요하시다면 부품도 갈아주겠다고 딜을 쳤다. 태형은 고스란히 그 열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심사가 뒤틀린 태형은 요 며칠 그래서 저기압이었다. 


"태형 행님, 밖에서 누가 찾는데요."


아직 업장 셔터도 안 올린 시간이었다. 친한 웨이터 재민이 선수 대기실 밖에서 태형을 불렀다. 선수들과 둘러앉아 포커를 치던 태형이 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에 담배를 물고 있어 웅얼대는 발음으로 물었다.


"누군데?"

"남잔데요, 한 사, 오십대?"


호스트바는 당연히 남자도 손님으로 받는 곳이었으나, 태형이 받는 남자 손님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이십대 후반의 아주 잘생기고 지적이며 누가 봐도 부자로 보이는, 우아한 남자. 아저씨 손님은 받아본 적이 없단 이야기였다. 태형은 카드를 내려놓았다. 무슨 개수작이야. 태형은 피우던 담배를 총알 빠진 꽁초가 산처럼 쌓인 재떨이에 꽂아 넣고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태형은 남자를 만나러 로비로 나온 것을 후회했다. 재민에게 그냥 내쫓으라고 할 걸 그랬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태형은 찡한 옆얼굴을 붙잡고 대리석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핏물이 섞여있었다. 

태형은 자신을 때린 남자가 앞에서 쌍욕을 퍼붓고 있는 것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수트 재킷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손거울 하나를 꺼냈다. 터진 입술을 거울로 비춰보며 검지로 살살 만지더니 한숨을 쉬며 눈을 꾹 내리감는다. 씨발. 태형은 손거울을 다시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돌아간 턱뼈를 맞춘다. 그리고 누가 손쓸 새도 없이 빠르게 남자의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에 주먹을 꽂았다. 태형이 멱살을 놓자 남자는 로비 바닥에 툭 쓰러진다. 태형은 남자 위로 올라타 남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남자의 얼굴이 곤죽이 되기 직전에 달려온 덩치가 산만한 가드가 구경만 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나가 태형을 끌어내었다. 


"야 이 좆만한 씹새끼야 이게 얼마짜리 얼굴인줄 알아? 시급이 얼마짜린 줄 아냐고 씨발아!!"


바닥에 깔린 남자는 태형의 고함을 들을 수도 없는 상태 같았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바닥에 피를 왈칵 내뱉자 반짝이는 것이 함께 딸려 나왔다. 금니였다. 


"너 때문에 얼굴에 피나서 오늘 영업 시마이잖아!! 씨발 너 인생 시마이나고 싶냐?!"


태형의 허리를 끌어안은 가드가 휘청거릴 정도로 태형은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야, 놔 봐. 놔 봐 안 때린다고. 놔 봐. 그 말에 가드가 미심쩍은 얼굴로 태형의 끌어안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태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는-그도 그럴 것이 태형에게 맞는 도중 대리석 바닥에 뒤통수를 여러 번 부딪쳤다. -남자를 구둣발로 툭툭 쳤다. 


"페라리 타이어 펑크 낸 새끼도 너지? 깽값으로 퉁치자."


마지막으로 태형은 가래침을 끌어 모아 피곤죽이 된 남자의 얼굴에 뱉고는 바에서 나와 지상으로 향하는 출입 계단을 올랐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태형은 바 건물 사이 좁은 골목에 풀썩 쭈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 모금을 아주 깊게 빨아들인 태형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흰 연기를 뱉었다. 건물 사이 틈으로 보이는 밤하늘이 뿌연 색이었다. 나 진짜 이 짓도 못해먹겠다. 태형은 오 년째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태형은 담배를 입에 물고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 저 편에선 어, 하고 누군가가 대답을 한다. 태형이 말했다. 야, 전정국.


"나 지금 너희 집 가도 돼?"

-응, 괜찮아. 오늘 여자 친구 안 와.


정국은 딱히 용건을 묻지 않았고 태형도 더 이상 구구절절 말하지 않은 채로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이유가 필요한 사이가 아니었다. 태형은 그 자리에서 줄담배를 태우다가 담뱃갑이 비었을 때가 되어서야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택시를 잡았다. 담배 다음으로는, 정국이 절실했다. 

국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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